카와쿠보레이(川久保玲)
카와쿠보레이(川久保玲)는 일본 도쿄 출신으로 1942년 10월 11일생입니다. 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설립자이며, 오늘날까지 꼼데가르송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너 디자이너입니다.
꼼데가르송은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눈 달린 하트 로고로 유명합니다만, 하트로고는 필립 파고스키에 의해 디자인된 꼼데가르송의 캐릭터 브랜드입니다.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명이 지어진 계기는, 카와쿠보레이에 따르면 이것에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의 노래인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따서 만든 것이라 합니다.
카와쿠보레이(川久保玲)의 어린 시절
카와쿠보레이는 일본 게이오대학의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치원부터 게이오기주쿠에 입학하여 게이오중, 게이오고를 거쳐 동대학 문학부 철학과와 미학미술사학을 전공합니다. 이후 일본의 섬유회사 아사히카세히(旭化成) 선전부에 입사했으나 3년 만에 퇴직하고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독립하게 됩니다. 사진 촬영의 일을 하다가 이미지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없었고, 그것이 계기가 스스로 옷을 제작하게 되며, 이후 스타일리스트부터 디자이너, 바느질 등의 일련의 작업을 전개하게 됩니다.
1969년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런칭
1969년 프랑스어로 '소년처럼'이라는 뜻의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고급 여성 기성복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1973년 주식회사 꼼데가르송을 설립하고, 1975년 도쿄에서 첫 쇼를 개최합니다.
꼼데가르송은 반 패션적(Anti-Fashion)이고, 규칙과 관습을 거부하는 해체주의적 성격을 가진 스타일을 메인으로 전개합니다. 꼼데가르송을 설립 후 약 10년이 지난 후, 카와쿠보레이는 보다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스타일과 정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전에 행해지지 않은 것과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강한 이미지를 만들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1980년까지 꼼데가르송은 일본 전역에 150개의 지점을 확장하며 성장했습니다. 1980년대 카와쿠보레이는 그의 의상 디자인에 블랙, 그레이, 화이트 등을 메인으로 사용합니다. 당시 이러한 카와쿠보레이의 '블랙'에 대한 이미지는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높은 평가내용
꼼데가르송에 대한 주된 평가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별화된 디자인 전략을 구현한다, 같은 천은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 시즌의 스타일을 답습하지 않는다, 패션시장의 눈치는 살피지 않는다, 라이센스 계약은 인정하지 않는다, 판매원은 모두 정규직이며, 생산은 일본생산에 한한다. 일본의 봉제기술은 해외유명 제품보다 고가의 가격라인을 형성하는 이유가 됩니다만, 완성도 면에서 매우 훌륭한 결과를 낸다고 합니다. 단순한 룰이지만 철저하게 해당 기준을 관철하며 도전하는 리스크를 감수합니다. 해외에서 평가가 높은 이유라고 합니다.
1981년 참가한 파리컬렉션의 '검은 충격'
꼼데가르송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1년 파리 컬렉션부터라고 합니다. 카와쿠보레이는 파리컬렉션 첫 참가에서 남성의 눈을 의식한 몸매를 강조한 여성상을 구현해 가는 서양 디자인과는 다른 노선을 선택합니다. 카와쿠보레이의 직선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하지 않은 디자인은 일부 혹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기존의 예술 관념과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운동)한 패션 스타일은 파리 패션계에 반향을 일으킵니다. 기존의 옷의 구조를 해체와 재구축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며 '카와쿠보의 미'를 구축하게 됩니다.
히로시마 시크(Hiroshima Chic)
1982~83년 가을겨울 파리컬렉션에서 발표한 작품에서 카와쿠보레이는 검은 충격의 임팩트 있는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패션을 전개합니다. 당시 블랙과 비대칭 재단과 미완성처럼 보이는 바느질과 풀어헤쳐진 원단의 마무리 등은 '히로시마 시크'라고 불리며 전위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계기는 1980년대를 일본식 아방가르드 패션을 주도하게 됩니다. 파리 오투쿠튀르를 정점으로 한 세계 모드계를 뒤흔든 가와쿠보레이의 검은 패션, 구멍 뚫린 니트(Hole Sweater)는 Y's의 요지야마모토와 함께 '검은 충격'으로 불리며 사회현상으로서 파격적인 이미지를 구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회성 붐이 아닌 브랜드 출범 35년이라는 세월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카와쿠보레이가 불러온 패션에 대한 평가와 영향
세계 패션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일본의 두 신예 디자이너들을 향한 격한 찬반양론이 펼쳐졌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은 서양옷에 대한 모독으로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새로운 여성의 삶의 방식을 제안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의 제안을 했다는 긍정적 의견을 내기도 하며 평가에 대한 분위기가 나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가와쿠보레이의 요지야마모토의 검은 이미지의 패션이 유행하며, '까마귀족의 누더기룩'으로 불리며 유행하게 됩니다.
이후로 등장한 아방가르드의 대가 마틴 마르지엘라와 독특한 구조미의 앤 드뮐미스터, 에스닉한 프린트의 드리스반노튼 등이 꼼데가르송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합니다.
카와쿠보레이(川久保玲)의 전방위적 활약
카와쿠보레이는 패션에만 집중하여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패션에 관련된 비즈니스 전반에 그 역량을 발휘하며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의 비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광고, 상점의 인테리어 등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도쿄 아오야마에 위치한 꼼데가르송 스토어는 건축가 퓨처 시스템즈(Future Systems), 인테리어는 가와사키 다카오와의 협업으로 설계하였고, 파란 점으로 장식된 경사진 유리파사드입니다.
더불어 가와쿠보레이는 1990년대 초 자신만의 매거진 'Six'를 출판하기도 하며, 출판물은 텍스트 중심이 아닌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이미지에 의해 구성되었습니다. 더불어 1996년에는 전문적인 미술 출판물인 'VISIONAIRE'의 객원 편집자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카와쿠보레이는 언론에는 자주 대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혁신적인 창작물에 집중하는 행보를 펼칩니다. 카와쿠보레이는 다수의 수상을 하였으나, 2019년 패션부문 최초로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카와쿠보레이의 패션과 예술분야에 끼친 영향력을 평가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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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 글은 <10月11日は川久保玲の誕生日です>을 일부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https://www.fashion-headline.com/article/1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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